꼼수'라는 단어가 이렇게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는 이 말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2011년 보란 듯이 유행어가 돼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물론이고 말하기 좋아하는 정치인들도 최근 자신의 발언 말미에 '꼼수에 불과하다'라는 문장을 넣어 방점을 찍으려 한다.
올 한해를 빛낸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들 중 으뜸이라고 할 만큼 '꼼수'는 떴다. 이게 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영향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17대 국회의원이자 자칭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정봉주 전 의원이 있다.
그의 인기는 12만 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팬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로 증명된다. 아시아 최고의 인기그룹인 동방신기의 팬카페 회원 수와는 불과 5만 차이, 여당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팬카페 회원 수는 정 의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 인기의 비결이 궁금했다.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그가 '화성인'처럼 느껴졌다. 지난 7일 하루 동안 정 전 의원의 전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새벽 6시 지역구 관리로 하루 시작 = 정봉주 전 의원은 그의 정치적 고향인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서울산업대 체육관에서 새벽 6시 배드민턴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10·26 재보선 선거 준비와 방송 및 콘서트 등 빡빡한 일정으로 두 달 만에 운동을 하러 나왔단다.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경우 유권자가 될 동호회 회원들과 안부를 나누고 운동을 했다.
그런데 배드민턴을 치기 위해 꽉 끼는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의 상체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무척 탄탄했다. "화·목·토요일엔 헬스와 런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75~76kg을 유지하고 있는데 뱃살을 줄이는데 주력하고 있어요."
식스팩을 만들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타이트한 티셔츠 안에서 살짝살짝 드러나는 나이 50을 넘은 그의 몸은 마치 이미 식스팩이 있을 것이란 착각이 들 정도로 다부졌다.
↑정봉주 전 의원이 7일 새벽 서울산업대 체육관에서 동호회 회원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밤에 1~2시간 자고, 이동 중 칼잠으로 해결= 아침 식사 후 집에서 오전 내내 휴식을 취한 그는 점심식사 약속을 위해 여의도로 출발했다. 평소 밤에는 잠을 한 두 시간 밖에 자지 않는다고 말했다.
"잠을 거의 자지 않는 편입니다. 어제도 새벽 4시에 잠들고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러 나온 겁니다. 이동하면서 차 안에서 많이 자는 스타일입니다."
정 전 의원은 실제로 차량으로 이동 중에 시간이 날 때마다 칼잠을 잤다. 특이한 것은 고개를 등받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숙인 채 수면을 취했다. 그게 제일 편하다고 했다.
그에게 이동 중 차안에서의 칼잠은 남들이 보기에 불편해 보이지만 무척 소중한 모양이다. 눈치도 없이 계속 질문을 해대는 기자에게 "이제 잘 것"이라며 "자는데 말 걸지 마"와 동일한 의미의 한 마디를 남기고 깊은 잠에 빠졌다.
◇내년 초 한미 FTA 다룰 책 출간 = 여의도에서 그는 한 출판사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새로운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 1월 출판이 예정된 정 전 의원의 두 번째 책은 위키리크스와 한미FTA에 관한 책이 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얼마 전 출판한 자신의 책 '달려라 정봉주' 판매 부수 자랑도 잊지 않았다. 출판 '깔대기'였다. "첫판 7만 부가 다 나갔고 지금까지 10만 부가 나간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출판사 관계자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출판사 관계자는 "정봉주 전 의원의 날카로운 분석력과 위트로 위키리크스에 거론된 한국 관련 내용에 대한 평가와 한미 FTA의 진실을 밝히는 책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항상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정 전 의원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는 책에 대한 논의를 할 때는 진지했다. 출판사 관계자들과 협의를 하면서도 책의 논점과 진행 순서를 꼼꼼히 체크했다.
↑정봉주 전 의원이 출판사와 기획회의를 하고 있다.
◇"명함이 필요없다, 휴대폰 번호 공개했으니까"= 여의도 일정을 마친 정 의원은 장소를 옮겨 청담동으로 이동했다. 부인과 함께 여성 월간지의 사진 촬영과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량으로 함께 강남으로 넘어가면서 정 의원에게 휴대폰 번호를 인터넷에 공개한 이유를 살짝 물었다. 그의 휴대전화 번호는 현재 인터넷에 공개돼 있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찾아낼 수 있다.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면 어떻습니까. 나는 정치인입니다. 처음에 공개하는 것이 어렵지 일단 전화번호를 알리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가두는 것은 불통입니다. 정치인에게 전화번호 공개는 소통의 기본이에요. (시민들에게 온 문자 메시지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메시지가 오면 정말 큰 힘이 되고 민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유의 큰 웃음소리와 함께) 그리고 명함 만들 필요도 없어요. 인터넷 검색하면 전화번호가 나오니까."
◇"아들·딸 나만큼이나 말 잘해"= 청담동에 도착한 그는 세 살 연하의 아내 송지영 씨와 함께 여성 월간지에 게재될 사진 촬영에 나섰다. 만난지 27년차에 접어든 부부는 사진촬영을 하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여전히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 전 의원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중학생인 큰 아들은 부모가 바쁜 관계로 분당에 있는 이모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는 두 자녀가 자신을 닮아 입이 발달했다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면서 "아들이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마디를 하면 모든 사람이 빨려들어 간다. 초등학생인 딸도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선생님들도 못 당한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런데 여성 월간지 사진 촬영을 하면서 정 전 의원에 대한 새로운 신체적 비밀 하나를 알아냈다. 그는 앉아서 다리를 꼬아 달라는 사진기자의 부탁을 듣고 "나는 다리가 안 꼬아 진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큰소리로 확인 해 주었다. "나 다리 못 꽈요."
◇"안철수, 정치 스트레스 견딜 수 있을까"= 여성 월간지 인터뷰를 끝내고 정 전 의원은 곧바로 홍대 부근에서 예정된 또 다른 잡지의 인터뷰를 위해 이동했다.
홍대로 향하는 차안에서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철수 원장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를 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정치권에 왔을 때 그 스트레스를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정치적 검증은 사실 둘 째 문제입니다. 지금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대단한 길을 가고 있는 분인데 오히려 대통령 도전이 더 낮은 위치로 가는 것 아닌가 합니다."
안 원장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느냐고 묻자 그는 "라이벌? 나는 늘 나만 생각한다. 나를 갈고 닦을 시간도 부족한데 남을 신경쓰다보니 자꾸 흠집을 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다른 사람 흠집을 낸다고 해서 그 자리가 내 것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